서심화야(書心畵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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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스터디 서심화야
by 도노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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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심화야는 피드백 의무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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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의 개인 연락처로 보내주셔도 무방합니다.


2. 들여쓰기나 엔터 등은 따로 편집하지 않았습니다. 


수정이 필요하시다면 말씀해 주세요.


3. 각 작품에는 다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참여자 : 달이삭, 도노



서심화야 5회차


'님의 침묵, 서문'



*



1


이것은 태초에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계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아무것도 없던 세상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빛이 있으라. 아무것도 없던 세상에 빛이 생겨났습니다. 세상이 차차 무엇인가로 채워져갔습니다. 해와 달과 별이 뜨는 하늘에 낮과 밤이 피었다가 지고, 바다와 땅으로 갈린 곳에는 날짐승과 물짐승, 땅짐승들이 자유로이 뛰놀았습니다. 하나님은 여섯 번째 날에 그 모두와 함께 살아갈 ‘사람’을 만드시고 이 모든 것이 보기에 참 좋았더라 말씀하시며 일곱 번째 날에 쉬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명령받은 대로 움직였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생물에게 하나 하나 이름을 붙여 주고, 돌보았습니다. 그 때에는 사자와 양이 함께 뛰놀았고, 무엇인가를 먹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나무나 풀도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았고, 생이 다해 죽는 일도 없었습니다. 영원토록 행복한 삶이 계속될 것이었습니다. 그 곳은 ‘완벽한 낙원’이었으니까요.


*


여인은 오늘도 그 항아리가 신경 쓰였습니다. 여인을 남편에게로 보내면서 신이 안겨준 항아리, 절대로 열어보아서는 안 된다는 항아리. 절대로 열지 말라고 하면서 왜 준 걸까요? 항아리는 무언가를 담기 위한 그릇인데. 차라리 주지 말지, 일부러 준 것은 나중에 몰래 열어보라는 뜻이 아닐까? 아니야, 아닐 거예. 신께서 그런 장난을 치실 리가. 하지만 역시 궁금합니다. 아아, 왜 호기심을 주셨는지. 여인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잠깐만, 살짝만 열어서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보면 되겠지.

고민하던 여인은 살그머니 상자를 열어보았습니다. 살짝 벌려진 틈새로 공기와 빛과 세상이 흘러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무언가가 튀어나왔습니다. 흔들흔들 움직이는 아지랑이 같은 색색깔의 무언가가 여인의 주위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깜짝 놀란 여인은 급하게 아지랑이를 잡으려고 손을 휘둘렀지만 아지랑이는 여인을 놀리듯이 재빨리 집을 빠져나가 버렸습니다. 여인은 닫았지만 이미 가벼워진 항아리를 안고 엉엉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이것은 인간을 ‘질투’한 신의 이야기입니다.


*


이것은 이미 하나님이 인간을 홀로 놓아둔 때의 이야기입니다.

딸은 살그머니 장막을 헤치고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하늘에서 번개와 불꽃이 내려 모든 것이 불타버린 도시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것은 아버지와 두 딸뿐. 새로 살아가야할 터전을 찾느라 헤매는 여정은 지독하게도 고된지라, 아버지는 모처럼의 술에 취해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천막도 조금 허술해 보였지만, 하늘에 뜬 달과 별과 하나님의 눈에게서 숨기에는 적당합니다. 뒤에서 언니인 첫째 딸이 어깨를 토닥였습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고 동시에 후세를 위해서. 딸은 다짐을 되새기며 장막 안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무엇을 사랑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까? 어디까지가 사랑이며, 어디까지는 사랑이 아닙니까? 이것을 정의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사람에게 신이 감정을 주었다면, 그 신이 감정을 가지고 태어나도록 잉태한, 혹은 그렇게 정한 존재는 누구입니까? 어디부터 어디까지 허락받고 허락하였습니까? 이것은 약속입니다. 약속하기로 약속했으며, 약속했기에 약속할 것입니다. 빙글빙글 도는 모순 속에서 사람과 사람과 사람이 사랑과 사랑사랑사랑을 하며 살아갑니다.


인간이 죄를 지어 신과 멀어졌더라.

그럼에도 신께서 인간을 사랑하시니, 그 삶이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2

 “선혜아빠, 좀 일어나 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대.”


 아직 잠결이 덕지덕지 묻어 있던 남편은 그 후로도 한참을 흔들어야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외할머니, 돌아가셨다고. …편히 가셨대?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니까 늙은이 호상이지 뭐. 장례식 가야지. 나 선혜 깨울 테니까 나갈 채비 좀 해요. 남편은 아직 졸린 눈을 손등으로 부비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몸을 일으켜 딸의 방으로 향했다.

 지나치는 걸음에서 문득 남편의 질린 눈빛, 자기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는다는데 사람이 눈물 한 방울 없어. 그런 모습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할머니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언제 눈을 감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90줄의 늙은이였고, 며느리들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골치 아픈 치매 환자였다. 명절이 되어서 가끔 얼굴을 뵈러 갈 때면 외할머니의 작은 방은 늘 큼큼한 냄새가 났고 모인 가족들은 유산도 얼마 없는 늙은이 더 자식들 고생시키지 말고 얼른 가셔야지, 어차피 들려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 거리낌 없이 그런 말들을 내뱉었던 것이다.

 칭얼거리는 딸을 도닥이며 옷을 입히고 나오자 남편은 막 세수를 했는지 아직 얼굴에 물기가 남아있는 채로 양복을 꺼내고 있었다. 엄마, 나 졸려. 안 가면 안 돼? 다시금 늘어지는 아이를 꼭 붙잡아 주고는 부엌 서랍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 아이의 입에 까 주었다. 입으로 들어오는 새콤한 사탕에 아이는 좀 잠이 깼는지 배시시 웃어보였다. 도르륵 도르륵 사탕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남편이 옷을 다 입었는지 나가자며 방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외할머니의 집으로 향했다.


 “선혜 졸립지? 엄마 무릎 베고 좀 누워있어.”


 아이의 작은 머리가 무릎 위로 묵직하게 올라온다. 그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자니 어린 눈이 금방 다시 감기고 곧 새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톡, 뭔가가 아이 입에서 굴러나온다. 반쯤 녹은 사탕이다. 자고 있으니 저도 모르게 뱉었나보다. 자동차 시트가 지저분해지기 전에 얼른 그것을 휴지로 싸서 손에 쥐었다. 아이가 자는 소리에 남편도 별 말이 없고, 침묵이 흐르니 괜히 졸려와 나 또한 잠깐 눈을 감았다.

 잠은 오지 않았다. 대신 돌아가셨다는 외할머니 생각을 했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외할머니를 꽤나 따랐던 것 같은데, 어느 정도 머리가 굳고 나니 슬슬 치매끼를 보이시는 외할머니가 싫어 외면했던 것 같다. 아주 못 알아 보셨던 건 아니고 그저 여기가 어딘지 좀 헷갈리시고 했던 말을 다시 되풀이하는 정도였는데도 그랬다. 어린 마음이 다 그렇지, 그리 생각하면 별로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잠시 있으니 손바닥이 조금씩 끈적거린다. 사탕이 녹아 손바닥까지 스며들고 있었다. 조금 짜증스러운 심정으로 그것을 휴지로 여러 겹 둘둘 마는데, 언젠가 비슷한 적이 있지 않았나 싶어 생각에 빠진다.


 ‘할머니, 손이 계속 끈적거려.’

 ‘에그. 또 먹던 것 손에 쥐고 있었어? 지저분하게스리. 할미가 새 사탕 줄테니까 이건 버리자. 지지야 지지.’

 ‘더 맛있는 걸로 줄 거야?’

 ‘할미 서랍에 너 좋아하는 거 많다. 지난번에 장 섰을 때 한 움큼씩 사왔지.’


 내가 뭘 좋아했더라,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사탕 이름을 생각하고 있는데 남편이 다 왔다며 차를 세웠다. 잠든 아이를 깨워 차에서 내리고, 별 생각 없이 손에 쥐고 있던 휴지뭉치를 바닥에 버린 후 외할머니네 집으로 들어갔다. 이 비좁은 집에 평소엔 자전거 한 대나 놓여 있으면 많이 있는 것일 텐데 지금은 여러 차들로 마당이 뒤덮여 있으니 더 좁아보였다. 명절에도 이렇게 많진 않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문을 연다.

 조금씩 곡소리도 나는 듯 하지만 그보다는 두런두런 얘기하는 소리가 더 많아 상갓집이라기엔 꽤 이질감이 있었다. 대부분 들리는 소리는 그런 것이다. 여러 사람 속 썩이시더니 이제야 가셨네. 그 별것도 없는 유산은 다 장례식에 쓴다네. 괜히 분쟁도 없고 잘 된 일이지. 평소엔 그렇게 난리난리를 치시더니 갈 때는 편하게 가셨다나봐. 수발 들러 온 며느리가 흔들어보지 않았으면 죽은 줄도 몰랐다는 거야, 글쎄.

 작은 소란의 틈 속에서 오랜만에 보는 친척들에게 인사를 하며 외할머니의 방으로 향했다. 항상 어둡고 냄새가 났기에 모두가 싫어했던 방이 오늘만큼은 인기다. 


 “선혜엄마 왔네, 오느라 고생했지?”

 “아니에요, 이모. 외할머닌 안에 계세요?”

 “그래. 들어가 볼 거야?”

 “그래야죠. 여보, 잠깐 선혜 좀 맡아줄래.”


 남편이 아이를 안는 것을 보고는 낡은 나무문을 열고 들어갔다. 죽은 이가 있는 방 치고는 상당히 산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손님들이 많이 오시고 더 이상 몸 약한 늙은이도 없으니 환기를 잘 시켜 놓은 탓일까. 물수건으로 시체를 닦던 며느리와 자식들이 나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 또한 같이 인사를 나누며 외할머니의 시체로 향했다.

 참 평온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까 들리던 말처럼 꼭 잠든 것만 같은 얼굴. 외할머니, 하고 부르면 금방 눈을 뜨고 내 새끼 왔나. 하고 대답할 것만 같은데. 그러나 이 나이 먹고 주책맞게 그런 짓이 하고 싶은 건 아니고, 그저 늙은이 조글거리는 손을 몇 번 만지다가 시선을 뗐다. 이정도면 예의는 다 했다 싶었다.


 “그런데 먹지도 않을 걸 왜 그렇게 사다가 놓으라고 한 거람. 어디다 쓰라고.”


 서로 종알거리던 그네들의 말 중에 유난히 귀에 박히는 게 있어서 시선을 보이자 그네들 중 한 명이 어깨를 으쓱이며 내게 말을 이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웬 사탕을 그렇게 사놓으라고 하시대요. 그래서 본인이 드실 건 줄 알고 사놨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하나도 안 드셨지 뭐에요.”

 “…그거 어디 있어요?”

 “네? 어디다 뒀더라. 아, 저기 서랍 안에 있을 거예요. 늘 거기만 열었다 닫았다 하셨거든.”


 그저 늙은이 주책이려니, 그렇게 생각하고 돌아가면 편할 것 같은데 내 손은 어느새 서랍을 향하고 있었다. 작은 서랍을 떨리는 손으로 열어보니 서랍 안을 가득 메운 사탕. 요새 사탕같이 커피 맛, 과일 맛, 이런 것도 아니고 옛날 시장에서나 사탕장수들이 봉투에 담아 팔고 있는 우유맛 사탕. 이빨도 없으셔서 이 찐득거리는 걸 스스로 드실 린 없으니 분명 남 주시려고 사다두신 거다.

 그제야 내가 예전에 어떤 사탕을 그리 좋아했는지 기억이 났다. 외할머니가 늘 본인 허리춤에 두시고 내 손에 한 움큼씩 쥐여 주곤 했던 사탕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제야 기억이 났다.


 ‘할머니 집엔 맨날 이거 있어? 맨날맨날 있어?’

 ‘우리 미란이 언제 올까 생각하면서 항상 사 놓지. 내 새끼 이거 제일 좋아하잖어.’



 누군가 이상해하며 선혜엄마, 하고 내 어깨를 건드리기 전까지, 그 서랍문은 한참 동안 닫히질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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